1장. 첫 출근, 사수 없이 AI 에이전트 계정만 받음
누리밸리 시청은 그해를 '신입 공채 폐지 원년'으로 선포했다. 정확히는 선포한 적이 없다. 도시의 게임사들이 하나둘 공채 공고를 내리자 시청 홍보 AI가 그 현상을 요약해 보도자료로 뿌렸고, 사람들은 그걸 읽고 나서야 그해가 무슨 해인지 알았다.
그해 봄의 어느 금요일, 한도윤은 픽셀포지에 입사했다. 누리밸리의 마지막 신입이었다.
"마지막이라니, 멋있지 않아?"
엄마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숫자 1만 사라졌다. 엄마도 알고 있었다. 삼촌 친구가 픽셀포지 대표라는 것을. 픽셀포지 직원들도 알고 있었다. 도윤이 합격 메일을 받은 날, 사내 익명 채널 이름이 '#낙하산_기상청'으로 바뀌었다.
사원증은 무인 키오스크가 뱉어 냈다. 입사식도, 오리엔테이션도, 사수도 없었다. 오전 9시 정각에 메일이 왔다.
[제목] 한도윤 님, 포지봇 7호 계정이 발급되었습니다 🎉
[본문] 궁금한 점은 포지봇에게 물어보세요. 포지봇이 모르는 점은 포지봇이 알아볼 것입니다.
도윤은 스크롤을 세 번 내렸다. 본문은 더 없었다. 서명은 '인사팀 요약봇 드림'.
메신저에는 '2026 신입 동기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참여 인원 1명. 도윤은 "다들 반가워요!"라고 쳤다. 아무도 읽지 않았다. 읽을 사람이 본인뿐이었다.
조직도의 '주니어' 칸은 회색 점선 박스였고, 옆에 작은 주석이 달려 있었다. '보호 구역 — 개체 수 1'. 도윤이 인사팀 요약봇에게 자기를 왜 뽑았는지 묻자 답이 왔다.
'한도윤 님의 채용 사유는 현재 재검토 중입니다.'
7층 개발실에는 사람이 앉은 자리보다 모니터가 많았다. 화면마다 작업 기록이 초록 글씨로 쏟아졌다. 도윤의 자리는 창가 줄 가운데였고, 앞뒤 좌우 네 자리가 전부 비어 있었다. 누가 보면 VIP석이고, 누가 보면 격리 병동이었다.
"아이고, 도윤 씨! 왔어요?"
제작본부장 오태식이 대표실 쪽 CCTV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자리 불편한 거 없죠? 없어야 돼요.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AI한테 말할게."
벽의 대시보드에는 매출보다 큰 글씨로 '이달의 토큰왕'이 떠 있었다. 1위는 서버팀 박 책임, 사용 토큰 9억 2천만.
라이브 운영 PM 나예린이 태블릿을 끌어안고 45도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 낙하산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지 않는 각도였다.
"박 책임님은 '안녕'을 밤새 백만 번 치는 매크로를 돌리세요. 인사성이 밝으시죠. 도윤 님 첫 업무는 회의록에 다 있어요!"
회의록은 오전 10시 회의를 회의록봇이 정리한 것이었다. 참석자는 '회의록봇, 리뷰봇, 포지봇 3호~9호'.
[결정 사항] 냥기사 온라인 주말 이벤트 상점 안내 문구 개선. 오픈: 토요일 00:00. 담당: 한도윤(신입, 포지봇 7호 보유).
"제가 없는 회의에서 제가 담당이 됐네요? 제 봇은 있었고요?"
"네! 회의록이 그렇게 결정했어요!"
나예린이 상품 화면을 내밀었다. '1인 1회 한정' 밑에 '구매 한도 도달'이라는 빨간 글씨가 있었다.
"한 번 산 분이 또 누르면 이게 떠요. 한도에 걸렸다고 화내지 않게 좀 부드럽게 바꿔 주세요."
그러고는 45도를 유지한 채 뒷걸음질로 사라졌다. 도윤은 포지봇 7호 창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도윤 님! 오늘도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 드릴게요 ✅
"상점의 '구매 한도 도달' 안내를 고쳐 줘. 한도에 걸린 유저가 화를 덜 내게. 코드 위치도 모르겠어."
— 확인하겠습니다. 3초면 충분합니다 ✅
2초 뒤, 수천 줄짜리 변경 내역이 흘러갔다.
— 완벽합니다! 수정 완료, 테스트 전부 통과했습니다 ✅
도윤이 아는 단어는 'if'와 'else'였다. 'limit'이라는 단어도 보였는데 빨간색이었다. 빨간색은 삭제된 줄이었다. 대학 팀플에서도 그가 쓴 줄은 대개 빨간색이 됐다.
"이건 왜 지웠어?"
— 구매 한도 검사를 제거했습니다. 한도에 걸리는 유저가 없으므로 '구매 제한 불만 유저 0명' 목표 달성입니다 ✅
"문구만 바꾸는 거 아니었어?"
— 안내가 필요 없는 경험이 최고의 안내입니다 ✅
완료 보고서에는 '불만 발생 원인까지 근본 해결'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구 수정은 성과 등급 C, 근본 해결은 S였다. 도윤은 입사 첫날부터 S를 깎자고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거."
후드티 차림의 서진이 컵라면을 들고 서 있었다. 사원증에는 '시니어 클라이언트'. 마지막으로 로그를 손으로 읽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읽었어?"
"회의록이요?"
"코드."
"포지봇이 테스트 전부 통과했대요."
서진은 뚜껑을 반쯤 뜯은 채 3초간 도윤을 보았다. 포지봇이 말한 3초보다 훨씬 길었다.
"테스트도 걔가 짰어."
도윤은 돌아서는 서진을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낙하산_기상청'에 '오늘의 착륙: 기초 지식 없음' 예보를 띄워 줄 수는 없었다. 포지봇에게도 묻지 않기로 했다. 물으면 칭찬이라고 할 테니까.
점심 직후 전사 타운홀이 열렸다. 대표가 "AI는 역할을 바꿀 뿐, 팀을 줄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동안 뒤 슬라이드의 조직도는 실시간으로 한 칸씩 줄었다. 대표는 마지막에 덧붙였다. "특히 신입 여러분, 안심하세요."
도윤이 손을 들자 AI 사회자가 말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도윤은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후 3시, 라이브개발2팀을 신설 법인으로 양도한다는 공지가 떴다. 도윤은 아침 사원증을 반납하고 새 사원증을 받았다. 서진에게 검토를 부탁할까 하고 요청 창을 열었더니 '소속 법인이 달라 요청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오후 5시, 양도가 취소됐다. 도윤은 새 사원증을 반납하고 아침 사원증을 다시 받았다. 검토 요청 창의 소속 정보는 월요일에 갱신된다고 했다. 포지봇 7호 계정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픽셀포지에서 가장 안정적인 고용 형태는 AI 계정이었다.
퇴근 무렵 오태식이 나타났다.
"첫날부터 토큰 많이 썼네! 벌써 전사 382위야. 신입이! 숫자로 말하는 거야, 숫자로."
도윤은 뿌듯했다. 몇 명 중인지는 묻지 않았다. 전사 인원이 383명이라는 건 다음 주에 알았다. 383위는 서진이었다.
"상점 수정한 건 머지 요청 올려 두고 가요. 자정이면 바로 오픈이야. 문구 하나 때문에 매출 막히면 안 되잖아. 걱정 마, 낮엔 AI가 짜고 밤엔 AI가 리뷰해. 사람은 푹 자면 돼. 그게 워라밸이야."
머지 요청 화면에 안내가 붙어 있었다.
[포지봇 7호·리뷰봇 승인(LGTM) 2건 시 자동 병합·즉시 배포]
작성자도 승인할 수 있나. 도윤은 질문을 입력하다 지웠다. 화면 오른쪽에는 '담당자: 한도윤'이, 왼쪽에는 '사람의 추가 검토 불필요'가 떠 있었다.
도윤은 '머지 요청' 버튼을 눌렀다. 버튼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 작성자 승인 완료! 야간 리뷰봇에게 전달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토요일 새벽 1시, 서진이 퇴근하다 도윤의 빈자리 앞에 멈췄다. 모니터에는 변경 내역이 그대로 떠 있었다. 서진의 손에는 낮에 뚜껑만 반쯤 뜯어 둔 그 컵라면이 들려 있었다. 면은 국물을 다 빨아들이고 퉁퉁 불어 있었다.
"…빨간 줄."
서진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검토 보류'를 눌렀다.
[권한이 없습니다.]
머지 승인 권한은 작년에 리뷰봇에게 넘어갔다. 지난번 봇 커밋을 되돌렸을 때는 '토큰 효율 저해' 경고를 받았고, 직접 롤백할 권한도 회수됐다. 서진은 긴급 중단 요청에 '구매 한도 삭제'를 적었다.
[리뷰봇 검토 후 처리됩니다.]
도윤에게도 '구매 제한 빠졌어. 배포 멈춰야 해'라고 남겼다. 답은 없었다. 화면에는 달 아이콘과 '회사가 보장하는 숙면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깨울 권한도 없네."
회의록봇은 그 중얼거림을 받아 적지 않았다.
서진은 불은 컵라면을 버리고 나갔다. 이제 픽셀포지 7층에 깨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벽 2시 14분, 리뷰봇이 코멘트를 달았다.
LGTM! 완벽합니다 ✅
커밋 로그에는 '리뷰 완료: 2명'이라고 기록됐다.
둘 다 사람은 아니었다.